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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당시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연합한 제국으로 유럽에서 강대국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매혹적인 작품으로 미술계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클림트는 정교한 장식, 상징주의, 인간 형태에 중점을 둔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금에 대한 사랑은 그의 가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아빠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금세공인이었고 빛나는 모든 것들을 다룰 줄 아는 거장이었습니다!
귀금속의 반짝임과 화려함 속에서 자란 클림트가 금을 좋아하게 된 것은 사실상 운명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에서는 단지 페인트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서 춤추는 액체 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키스(The Kiss)"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입맞춤이라고 작품명을 불렀었는데요.
지금은 키스로 불립니다.

마치 클림트가 마이다스의 마법을 빌려 작품에 뿌린 것과 같습니다.
금박은 그의 비밀 무기가 되었고, 단순한 그림을 화려한 마법의 영역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작품 키스는 1909년 작입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벨베데레 궁전, 궁전 자체도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오히려 클림트의 키스 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곳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가 매입하여 벨베데레라는 이름이 되었는데요. 합스부르크 가문의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보면 꽤 큰 느낌인데요.

가로, 세로가 정확히 180센티미터로 정사각형의 작품이지만, 실제로 보게 되면 꽤나 긴 직사각형의 모양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것은 키스를 하는 남성의 치렁치렁한 황금 외투 덕분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왜 금에 대한 집착이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클림트의 가문의 뿌리와 황금빛 손을 가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에 대한 찬가였을 것입니다.
아니면 클림트의 세계에서 금은 물질 그 이상, 즉 언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 열정, 천상의 언어 였습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클림트 예술의 찬란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면 모든 것은
바로 "거장의 어린아이의 작은 금가루 마법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기억해 보는게 어떨까요?
그의 상징적인 그림 "키스"에서 클림트는 황금 포옹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포착합니다.
부부의 몸은 복잡한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고, 금박을 사용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의 작품의 상징주의는 종종 사랑, 열정, 삶과 죽음의 얽힘이라는 주제를 탐구합니다.
클림트의 작품들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황금 만능주의라는 인상을 준다는 냉소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살려 한 편의 아름다운 상징을 선사해 줬다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키스만큼이나, 멋진 작품을 만나러 가실까요?
다음 글 :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에 대해